엘리엇 2016년 3월 소송 취하하면서 '비밀합의'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 중재 판정서 첫 공개
삼성물산 공시위반 지적·주주형평성 논란 '가열'
2015년에 진행됐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지난해 삼성이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에 724억원가량을 지급한 사실이 확인됐다.
<한겨레>는 28일 앨리엇이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삼성물산과 '비밀합의'를 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2015년 합병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했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하는 주식매수청구가격 소송을 걸었다.
이후 엘리엇은 소를 취하했다. 법무부와 엘리엇이 중재판정부에 제출한 문서에 따르면 삼성물산과 2016년 비밀합의를 맺었다. 이 사실은 법무부와 엘리엇 사이의 '투자자와 국가 분쟁해결절차' 과정에서 밝혀졌다.
앞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합병 비율을 1대 0.35로 결정했지만 주주들은 삼성물산의 주가가 저평가됐다며 반발했다.
삼성물산의 주주였던 엘리엇도 합병 반대 입장을 내보이며 '주주총회 소집통지 및 결의금지'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국민연금 등 삼성물산의 주요 주주들이 합병을 찬성하면서 합병은 그대로 진행됐다.
지난해 4월 옛 삼성물산의 주주들이 법원에 낸 주식매수가격 결정에 대해 대법원은 합병 당시 삼성물산의 주식매수가가 저평가됐다고 판단했다.
삼성물산이 제시한 1주당 주식매수가격은 5만7234원이었는데 대법원은 6만6602원이 적당하다고 결정했다.
대법원 결정 뒤 엘리엇은 원천징수세 등을 공제하고 659억263만4943원의 추가 지급금을 삼성물산으로부터 받았다는 내용을 중재판정부에 통지했다.
해당 금액은 당초 주식매수가격 5만7234원과 대법원이 결정한 가격 6만6602원의 차액 9368원에 엘리엇이 보유했던 773만2779주만큼의 돈이다.
엘리엇은 지난해 5월12일에 이 돈을 받았고 각종 세금과 규제와 관련된 사실이 확인되면 송금될 것이라고 중재판정부에 설명했다.
삼성물산이 엘리엇과 별도의 합의로 대법원의 주가 결정 차액만큼 추가 지급금을 지불하면서 일반 주주들과의 형평성 논란이 거세질 전망이다.
당시 삼성물산은 일반 주주들로부터 1172만주를 주당 5만7234원에 사들였다. 엘리엇을 제외한 다른 주주들은 결국 제값을 받지 못하고 주식을 판 셈이다.
손창완 연세대 법학과 교수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일반 주주들은 억울하겠지만 상법상 회사는 주식매수가격을 개별 주주와 협의에 의해 결정할 수 있다"며 "엘리엇처럼 추가 지급금으로 보전받는 것을 막으려면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엘리엇이 대한민국 법무부를 상대로 제기한 분쟁 소송에서 엘리엇의 손을 들어주고 1300억원의 배상금 판결을 내렸다.
엘리엇은 합병 당시 국민연금 등 주요 주주들의 찬성을 문제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엘리엇은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국민연금에 불법적인 영향력을 발휘해 성사된 합병으로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고 이를 PCA가 받아들인 것이다.
일각에선 외국 투자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따른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ISDS)'를 통해 손해 배상을 받을 수 있지만 국내 투자자는 국내법의 한계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당시 삼성물산 주주였던 일성신약도 국민연금이 합병에 끼친 부당한 영향력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합병과 관련해 삼성물산이 공시 의무를 위반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삼성물산의 비밀합의와 추가 보상금 지급은 공정거래와 투자자 보호 등과 관련해 중요한 정보였지만 이를 공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이용우 의원(더불어민주당·경기고양)은 "삼성물산이 엘리엇에 거액을 지급하고도 공시하지 않은 것은 공시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보인다"며 금융당국의 조사를 촉구했다.
이에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비밀합의 내용은 확인도 어렵고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로는 공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의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이재용 회장 경영권의 '키 포인트'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당시 23.2%의 제일모직 지분을 보유했던 이재용 회장은 양사의 합병으로 삼성물산 최대주주가 됐다. 이재용 회장에서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전자로 내려오는 지금의 지배구조가 합병으로 인해 완성됐다는 비판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지난 26일 시민단체들은 거액의 손해배상금과 관련해 이재용 회장의 책임을 묻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용건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위원장은 "이재용 회장은 3대 세습을 위한 지분 확보의 일환으로 삼성물산을 손에 넣어야 했을 것"이라며 "불공정한 합병 비율로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이어 "불법적으로 이뤄진 합병에 대해 이재용 회장과 삼성이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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